쓰러진 출판도매상…"개별 부도라고? 연쇄도산 어쩌라고"

“차라리 책을 불태우자.”


국내 대형 책 도매 유통 업체인 송인서적의 부도 소식에 어렵게 꾸려오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출판계의 분노와 비통의 목소리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가라앉지 않고 있다.

400여 개 단행본 출판사가 모인 한국출판인회의는 3일 채권단 대표 자격으로 송인서적의 재고 도서와 자산, 거래서점의 채권까지 인수인계를 받기로 했지만, 결국 청산 형태라 이후 출판사의 연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A 출판사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송인서적 부도 여파로 출판사들이 입을 손실은 1년 예상 영업이익의 30~50% 수준”이라며 “어음 비중이 높고 잔고가 많은 심각한 표본을 대입한다면 영업이익 전체 수준을 한방에 날린 출판사가 한두 곳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탁거래로 쌓인 매출이니 100% 진성은 아니고 창고가 열려 실물이라도 건지면 일부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장부에 기록된 매출이 글자 그대로 ‘신기루’가 되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B 출판사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자산이 고스란히 부채로 변하는 것을 목도하는 기이한 체험을 했다”며 “매출 대비 잔고와 수금 어음 비율이 상당히 높아 암담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C 출판사 대표는 “전체 피해 액수가 200억 원 이상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대개 단행본 출판사(제조업체)가 피해자”라며 “현재 상황보다도 이후 거래 위축과 신뢰 붕괴가 더욱 우려되는 상황에서, 주무 부처인 문체부는 줄줄이 특검에 불려가고 있다”며 현 정국을 비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송인서적과 회원사가 2000개 정도이며 그 가운데 1000개 출판사 정도가 어음 거래를 해 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중소형 출판사는 적게는 수천 만원 대에서 1억 원 대 가량의 피해가 예상된다.

20년 만에 다시 부도라니…“전근대적 유통구조·납품 경쟁”

출판인들은 송인서적 부도의 근본적인 이유로 ‘어음’ 위주의 낡은 유통 구조 문제를 꼽는다. 위탁 방식으로 이뤄지는 도매 거래의 경우 출판사들이 도매상에게 책을 위탁한 뒤 각 서점에서 판매되는 만큼 대금을 받는다.

D 출판사 대표는 “어음결제이다 보니 타격이 큰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도매상과 출판사, 서점 간 계약과 결제가 정확한 판매 데이터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잔고 중심으로, 잔액에서 일정 부분을 결제하는 방식으로 된다”며 “유통 선진화 문제는 IMF 외환위기 때부터 지적됐음에도 개선되지 않아 결국 이런 사태를 빚었다”고 비판했다.

공공도서관·학교·관공서 납품 문제가 도매상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출판인회의 관계자는 “도매상 입장에선 (도서관 등) 납품 비율도 큰데, 최근 지방서점이 납품 권한을 따고 도매상에 경쟁입찰을 붙였다”며 “낙찰받기 위해 도서를 싼 가격에 공급하고자 경쟁하다 보니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동네서점 풍경. 지난 2일 국내 대형 책 도매 유통업체 송인서적의 부도 소식이 알려지면서 출판, 서점, 인쇄 업계의 줄파산까지 예고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문체부 “개별 기업 문제” vs 출판계 “유통 붕괴로 연쇄 부도 어쩌라고”

정부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문체부는 “정부 차원의 특별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문체부 출판인쇄산업과 관계자는 “송인서적은 개별 회사이기 때문에 개별 업체가 부도났다고 해서 정부가 따로 융자 자금지원을 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1998년 IMF외환위기 당시 송인서림(현 송인서적)과 보문당이 도산하며 500여 개 서점이 문을 닫자 정부는 문예진흥기금으로 500억 원을 긴급 지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당시는 출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여러 사업체가 부도나는 상황이었고, 이자율이 20%에 육박했기 때문에 긴급지원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출판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개별 기업의 부도로 보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E 출판사 대표는 “결국 청산이라면 채권단을 구성해도 못 받는 것”이라며 “사회적 기업을 만들든 정부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비판했다. 출판 유통이 무너지면, 결국 연쇄부도인데 개별 기업의 문제로 봐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F 출판사 대표는 “서적 도매상이라는 공룡 하나가 무너지면서 공존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던 출판사, 소매상, 제작처 등이 줄줄이 무너지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며 “출판계가 신년 벽두부터 생존을 걱정하게 생겼는데 걱정 한 마디 전하는 정당이나 대선주자가 없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