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사랑니 뽑으러 갔다가…"큰 병원 가라" 왜?

# 부산에 사는 대학생 임모(27)씨는 겨울철이면 유난히 심각해지는 피부 건조증으로 피부과를 찾았는데 의사에게 엉뚱한 제안을 받았다. 자신의 증상에 대한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의사는 난데없이 여드름 치료를 권유했다. 피부 건조증을 치료하려던 임 씨는 갑자기 여드름 환자가 돼버렸다. 의사는 여드름 시술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며 비싼 시술을 권했다. 임 씨는 여드름 치료는 나중에 하겠다며 병원 문을 나섰지만 진료비가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병원들이 수익 올리기에 집중하며 임씨처럼 질병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소외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피부과나 치과 등이 다른 진료로 환자를 유도하거나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치과에서는 치료비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은 사랑니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사랑니 치료를 받은 회사원 김모(32·여)씨는 "회사 근처 병원으로 전화 상담을 했는데 사랑니는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며 "그러나 동네 치과에서는 위험 부담은 언급조차 안하고 사랑니를 뽑아줬다"고 말했다.

물론 누워있는 사랑니를 치료할 땐 잇몸과 턱을 지나는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잇몸을 찢고 꿰매는 수술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규모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도록 권유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간단한 사랑니 발치까지 큰 병원으로 유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과에서 사랑니 발치는 '돈이 안 되는' 대표적인 진료로 꼽히기 때문이다. 2시간까지 소요되는 사랑니 수술 후 의사가 받는 돈은 10만원을 채 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부 치과에서 사랑니 시술을 안 하는 '태업'을 불사하고 있다.


피부과도 돈 되는 손님만 환영하기는 마찬가지다. 레이저나 필러, 보톡스 등 비싼 수가의 시술이 늘면서 '피부 질환' 환자들은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전락했다. 값 비싼 시술 장비 구입비용을 만회하려면 피부 질환 환자를 볼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한 피부과 전문의는 "피부과 질환은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일반 환자보다는 미용 목적 환자를 우대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비싼 장비를 갖추고 수가가 낮은 피부 질환 환자들만 받아서는 병원 운영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법상 의사가 환자를 이유 없이 거부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을 내릴 수 있다. 한 달간 의사 자격도 정지된다. 피해를 경험한 환자가 병원 관할 보건소에 신고하면 되지만 환자들이 부담스러워해 실제 신고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환자의 질환과 관련 없는 다른 시술을 권유하는 것도 불법 소지가 높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진료를 위해 찾아온 환자에게 다른 치료를 유도하는 것은 진료 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의사가 '돈이 안 된다'는 목적으로 환자에게 다른 시술을 권유했다면 처벌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최근 의료계에는 수억원의 빚을 지고 망했다는 병원의 뒷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국내 중소병원의 도산율이 10%에 육박했다는 비공식 통계까지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은 "의료계가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하며 경영 만능주의에 빠진 병원들로 환자들의 문턱만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