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텐프로' 업소가 사라진다?

"솔직히 올 연말 특수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매년마다 연말 특수를 톡톡히 누려온 다국적 위스키업체의 한 임원은 올 연말 위스키 판매량이 예년에 비해 한결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위스키는 대표적인 경기 민감 소비재다. 연말 대목에서 위스키가 흥행에 참패한다면 내수 경기는 이미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조짐은 이미 10월부터 감지됐다. 위스키업계에 따르면 10월 위스키 총 판매량은 17만4784상자(1상자=9리터)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8.4% 감소했다. 지난해 경기침체가 확연했던 것을 감안할 때 8%의 격차는 최근 불경기가 지난해보다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다국적 위스키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 3년간 12월 위스키 판매량은 24만∼25만 상자를 넘으며 연중 최다 판매 기록을 보였다"며 "그러나 10월이후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어 올 12월에는 20만 상자를 넘기면 선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스키 판매량 증가에 기여도가 높은 룸살롱이나 클럽 등도 매출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 경기가 좋을 때는 룸살롱의 하룻밤 테이블 회전률이 3∼4회에 달했다"며 "그러나 이젠 하루 2회전만 해도 장사가 잘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경기가 좋을 때는 룸살롱 중에서도 고급 술집인 속칭 '텐프로'가 서울 강남에만 50∼70곳에 달했다"며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 경기침체로 손님이 줄면서 지금은 10여 곳만 영업하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위스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와인도 연말 특수가 사라지고 있다. 11월초부터 한 달 기한으로 판매에 들어간 보졸레누보 같은 와인은 2만원대 가격에도 불구,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급감했다. A편의점업체가 지난 27일 현재까지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대비 8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저가 와인인데도 구입하는 고객들이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먹구름은 의류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아웃도어업체들마다 겨울 최대 주력상품으로 꼽고 있는 헤비다운 자켓은 올해 판매량이 급감하는 추세다. 국내 아웃도어업체 한 관계자는 "11월초부터 헤비다운자켓 신상품 판매를 시작했는데 지난해보다 30% 정도 판매량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렇다보니 아웃도어업체들은 때 아닌 세일 경쟁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아웃도어업체 관계자는 "원래 겨울 의류 세일은 12월 중순이후에나 시작하지만 올해는 워낙 판매부진이 심각해 11월 중순으로 세일을 앞당겼다"고 밝혔다.

일부 업체들은 예년보다 할인폭을 키워 신상품 의류를 50%까지 싸게 팔기도 한다. 이런 판매 추세라면 사실상 유례가 없는 겨울의류 이월상품이 나올 수 있어서다. 아웃도어업계 관계자는 "세일을 앞당기고 할인율도 키웠지만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아예 끊기다시피 했다"며 "의류업계에서는 '이러다 IMF 경제체제 이후 최악의 판매부진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라는 말까지 돈다"고 밝혔다.

속옷시장에서는 반대로 중저가 제품들로 손님이 몰리고 있다. 비비안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한 브랜드인 블루비비의 경우 저가 제품이 많아 지난 10월 매출이 지난해대비 20% 늘었다. 비비안의 다른 제품보다 가격이 10~20% 저렴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제철상품인 아우터와 대형가전 등의 판매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에 따르면 11월 아우터 판매는 전년대비 19.0% 감소하였으며, 목돈을 들여 구매해야하는 대형가전도 전년에 비하여 매출이 5% 정도 감소했다.

반면 일반 제품 대비 가격이 저렴한 대형마트의 자체브랜드(PB) 상품은 전년대비 16.7% 신장했다. 지난해 이마트에서 PB상품의 매출 비중은 23.9%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올해는 25%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마트 측은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소비심리가 악화되며 당장 급하지 않은 고가의류와 대형가전 등의 소비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며 "또 소비자들이 가격이 민감해지며 저렴한 자체브랜드 상품의 구매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올 연말보다 내년 1분기가 더욱 걱정스럽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수의 내수업체 관계자들은 "올 연말보다 내년 1분기에 판매 부진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 현장의 솔직한 목소리"라고 밝혔다.

내년 하반기 이후에도 경기 활성화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항공대 경영학과 이승창 교수는 "가계부채가 워낙 많은데다 주가 급락 등으로 재테크에 실패한 사람들도 많아 내수 경기가 더욱 안 좋은 모습"이라며 "베이비부머세대 퇴직까지 맞물려 앞으로 2∼3년은 내수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화점 매장 풍경.(머니투데이 자료 사진)..이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