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세 버려야"…盧의 수줍은 웃음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줍은 웃음을 짓고 있다. 주변을 의식한 듯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웃음에 주름진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두 팔은 힘을 빼면 놓칠 새라 누군가를 꽉 껴안고 있다. 상대도 신나는 표정으로 전임 대통령의 어깨에 한 팔을 걸친 채 맞포옹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온 방문객과 찍은 사진이다. '봉하찍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방문객들의 사진을 찍어줬던 노 전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찍었다.


사진 옆에는 지난 2004년 8월 노 전 대통령과 지인이 나눈 대화가 적혀 있다.

"대통령이라면 제왕적 권위를 갖추고 위세를 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고가 있다. 혁파돼야 할 낡은 사고다. 그런 생각이 바로 역사 진보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제 그 잘못된 '지도자의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집 '사람 사는 세상'이 14일 발간됐다. 사진집은 노 전 대통령의 유·청년 시절과 민주화 운동 당시와 5공 비리 청문회 장면, 대통령 재임과 퇴임 뒤 등 442장의 사진을 담고 있다. 민자당 반대 시위 사진과 '노간지'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퇴임 뒤 봉하마을 사진 등도 실려 있다.


4장으로 이뤄진 사진집의 서장 격인 '노공이산'에서는 유년시절의 흑백사진 속 고향으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어 2장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는 6·10항쟁을 이끈 민주화운동가에서 청문회 스타로, 16대 대통령 당선돼 지난해 2월 퇴임하기까지의 정치역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탄핵, 남북정상회담, 자이툰 방문 등 대통령 재임기간의 역사적 순간과 청와대에서의 일상도 담겼다.

3장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퇴임 뒤 풀 썰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 서민·아이들과 어울리던 소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손녀와 놀아주는 할아버지, 아내와 산책을 즐기는 남편으로서의 소탈한 모습이 눈에 띈다.

4장 '서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갔네'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영결식 등 추모현장 사진이 실렸다.

사진집을 펴낸 노무현재단 측은 "노 전 대통령은 사진 촬영을 어색해했지만 사진기자들의 수고에 늘 호의적이었다"며 "'포토제닉'한 사진을 가장 많이 남긴 대통령이기도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