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막은 정부'에 먹거리로 불만 터져

- '먹을 것'… 쉽고 공유할 수 있는 생존 문제
- 강부자 내각과 IMF 국민 사이의 거리감
- 정부-국민, 불신의 골 깊어져

ⓒ이명근 기자

지난 10일 광화문 사거리,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대형 컨테이너박스가 등장했다. 경찰은 시위대와의 충돌을 우려해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이것이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정부식 소통이냐"고 물었다 .


소통의 부재를 상징하는 그 컨테이너 박스 앞에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협상무효, 고시철회"는 물론 "이명박 정부 퇴진"이라는 구호가 나온 지도 벌써 오래다.

전문가들은 "촛불시위는 소통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새 정부 출범부터 강부자 내각, 공천 파동 등으로 누적된 정부와 국민 사이의 불신이 촛불시위로 표현된 것이라는 진단이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폭발한 뇌관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와 국민 간 어느 정도 소통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이번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토록 '촛불민심'이 타오른 것은 쇠고기 파동을 거치며 이 같은 문제의식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란 게 공통된 견해다.


쇠고기는 정치나 경제처럼 어렵고 딱딱하고 추상적인 주제가 아니다. '먹을 것'이라 이해하기 쉽고 공유하기 쉬운 데다 건강과 생명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쇠고기를 통해 소통과 민주주의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됐다는 얘기다.

지난달 초 촛불시위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국민들을 시위현장으로 이끈 것은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웰빙'의 시대, 나와 내 가족의 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매일 저녁 촛불로 점화됐다.

시위현장에서 만난 강모씨(여·34)는 "고기는 안 먹으면 된다지만 조미료에 들어가는 쇠고기는 어떡하냐"고 말했다. 아들 가족과 함께 광화문에 자리를 잡은 최모 할머니(66)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먹는 음식인데 어떻게 (촛불집회에) 안 나오겠냐"고 되물었다 . 수업을 마치고 왔다는 15살 중학생 김모군은 "쇠고기 문제는 친구들도 다 안다"고 말했다.

처음에 쉽고 공유할 수 있고 죽고 사는 건강의 문제에 쏠렸던 촛불 시위대의 감수성은 쇠고기 위생조건에 대한 장관 고시일이 다가오면서 정부의 고압적인 태도의 문제로 옮아갔다. 장관 고시가 발표된 지난달 29일, 광화문 거리에 4000명이 모였다. 다음날인 30일 주말에는 2만 명이 모여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외쳤다.

"말로만 섬긴다고 하지 말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구호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타임(TIME)과 가진 회견에서 "국민의 견해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서 만난 이혁재씨(38·인천)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해한다며 국민의 요구에 대답하지 않는 대통령과 이해할 수 없다며 우리의 요구에 반응을 좀 보이라는 국민, 둘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